혜화동 사건 이후 숨어지내던 유영철은 교도소에서 나올 때 받아온 사회 복귀 비용과 그 전에 숨겨뒀던 돈 등 수중의 돈이 거의 다 떨어져 이제는 어디선가 돈을 마련해야 다음 범행도 하고 먹고 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주택가 살인을 할 때 돈을 좀 들고 나올걸 하는 후회도 되었지만 체포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덕에 지금도 경찰은 피해자 주변을 중심으로 수사중이라는 보도가 계속되지 않는가.
유영철은 자신의 장기인 좀도둑질과 약점을 미끼로 한 갈취로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12월 초, 유영철은 시장에서 미국 헌병 마크를 붙인 장난감 경찰 배지에 자기 사진과 조악하게 작성해 인쇄한 서울경찰청 형사 위조 신분증을 붙여 그럴싸한 경찰 배지를 만들었다.
이 배지를 안주머니에 넣고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유영철은 주로 찜질방을 전전하며 잠든 손님의 옷장 열쇠를 몰래 빼내 지갑을 터는 수법으로 돈을 마련하다가 2004년 1월 20일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종업원에게 덜미를 잡혀 경찰에 체포되는 위기를 맞았다.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 범인을 쫓는 수사진에게 알려지거나 품 속의 가짜 경찰 신분증을 들키면 큰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범행을 극구 부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순진해 보이는 10대 후반의 어린 피해자에게 두 배로 변상할테니 한 번만 봐달라고 간청했다. 호송하던 경찰관에게도 합의를 보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화가 많이 났는지 합의를 봐주지 않아 순찰지구대까지 연행되었으니, 이제 경찰서로 넘겨지면 모든 게 들통나서 끝장날 판이었다. 공포와 두려움으로 입에 침이 마르고 머리가 아득해졌다.
순간 경찰관 혼자 목격자 이야기 듣고 피해자와 이야기하느라 자신에게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보였고, 이때다 싶어 옷핀으로 수갑을 풀고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곧 뒤쫓아온 경찰관에게 붙잡혔고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지만 웬일인지 누구도 노인 연쇄 살인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듯 했다. 곧 구속영장도 기각되어 풀려 나왔다.
이후로는 찜질방에서건 어디서건 도둑질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신 위조한 경찰 배지를 들고 다니며 여관에서 윤락녀를 부른 후 윤락 행위 혐의로 체포한다며 돈을 빼앗는 수법으로 여러 차례 갈취했다. 이 과정에서 유영철은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특히 겁을 많이 먹은 여성은 수갑을 채운 채 숙소까지 좇아가 집에 있는 금품을 빼앗는 등 파렴치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들을 사용했다. 유영철이 경찰관이라고 믿은 여성들은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
유영철은 범죄 행각을 계속하는 동안 아내를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충동이 자주 들었지만 아내를 살해하면 당연히 용의선상에 오르고 체포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계속 충동을 억눌렀다. 하지만 생각할 수록 분이 안 풀려 어떤 식으로든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혜화동 살인 이후 약 4개월, 찜질방 절도로 체포된지 2개월이 지난 2004년 3월, 유영철은 다시 살인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아내에 대한 분풀이도 할 겸 그동안 경찰관 사칭 갈취로 자신감이 붙은 유흥업 종사 여성들을 노렸다.
첫 희생자는 전화방에서 불러낸 스물네 살의 여성이었다. 신촌의 한 쇼핑 센터 앞에서 만난 여성에게 가짜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고 윤락 행위 혐의로 처벌하겠다며 자신의 원룸으로 데리고 갔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피해자가 도주하려고 하자 피해자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가서 부유층 노인을 살해한 것처럼 해머로 머리를 내려처 살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범행 장소가 자신의 집이었기 때문에 사체를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고민 끝에 공포영화에서 본 대로 사체를 토막낸 후 내다버리기로 하고, 밤새 칼로 사체를 마디마디 자르면서 공포심도 줄이고 이웃에게 안 들리게 하려고 내내 음악을 크게 틀어두었다. 사체 절단이 끝난 새벽에는 비닐 봉지에 겹겹이 싸서 들고 나와서는 택시를 타고 인근 야산으로 가 인적이 없는 장소를 골라 파묻었다.
그리고 한달이 채 지나기 전인 4월 초에는 전화방에서 스물일곱 살 먹은 여성을 불러내어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시도했다. 그런데 피해 여성이 콘돔 사용을 요구하자 기분이 나쁘다며 성관계를 하지 않고 화장실로 불러내어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 후 같은 방법으로 사체를 토막내어 암매장했다.
4월 13일에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황학동 벼룩시장에 나갔다가 CD와 비아그라 등을 파는 노점상에게 가짜 경찰 신분증을 보이며 수갑을 채우고는 돈을 갈취하려고 했다. 그런데 왠지 의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노점상이 영업용으로 사용하던 승합차에 태우고 자신의 원룸 근처 주차장으로 데려와 피해자를 차에 결박해놓고는 원룸에 가서 칼과 해머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차문을 열자마자 칼로 피해자의 얼굴을 20차례 이상 마구 찌르고는 해머로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살해했다. 살해 후에는 차를 몰아 인천으로 간 뒤 피해자의 신원을 알지 못하게 손목을 잘라내어 바다에 던져버리고 차안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구기동 30대 남자 피해자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이 제압 당할 수 있는 성인 남성에게는 지나칠 정도의 공격을 퍼부어대는 모습에서 열등감과 비열함,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유영철은 황학동 노점상 살해 직후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데 자신의 원룸 근처까지 와서 살인을 했기 때문에 목격자나 증거를 남겼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새로 이사한 원룸에서 7월 15일 검거될 때까지 10명의 여성을 더 살해하는데, 그 수법과 토막 후 암매장하는 방법은 같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를 마신 미국의 연쇄살인범 체이스(Chase)의 엽기적인 모습을 흉내내어 여성 피해자의 장기 일부를 믹서기에 갈아 먹어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