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살인 현장이나 수법 묘사가 포함된 글이므로 읽는 데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체포된 남자의 이름은 유영철. 절도 등 전과 11범이었고 지난 1월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발생한 소액 절도 사건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중인 피의자였다.
“이 놈 완전 도둑놈이군”
기동수사대 형사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를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유영철이 이상한 대답을 했다.
“마사지사가 마음에 안 들어 바꿔달라고 하고 기다리는데 다짜고짜 덤벼들어 붙잡았기 때문에 마사지사는 잘 모르고요, 요새 발생한 서남부 살인 사건 그거 다 제가 했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체적으로 질문하자 서남부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유영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야, 그럼 휴대전화는 어디서 났어?”
유영철은 7월 13일 새벽 4~5시에 길을 걷는데 지나던 차가 창문을 열고 봉투를 버렸고 그 안에 휴대전화와 동전, 시계, 휴지, 생리대, 명함 등이 들어 있었다고 대답했다. 7월 12일에도 이 휴대전화로 불러낸 마사지사가 실종되었는데? 당시 유영철이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출장 마사지사 업소 번호는 여러 개라서 각기 다른 전단지에 적혀 있지만, 사실은 모두 한 업소의 같은 전화로 연결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12일에 전화한 업소와 14일에 전화한 업소가 다른 줄 알고 지어낸 거짓말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형사들은 일단 유영철이 내뱉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기로 했다. 7월 16일 밤 12시 10분 경, 횡설수설하던 유영철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인권이 강조되고 가혹 행위 의혹만 있어도 징계를 당하는 판인데 큰일났다 싶었다. 취조하던 두 형사는 얼른 유영철의 수갑을 풀고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는 괜찮은지, 물이나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친절하게 물었다.
곧 진정된 유영철은 고분고분해졌고 11명을 살해해서 암매장했는데 다 자백하테니 현장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두 형사는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망설인 끝에 “그래, 가보자”며 지원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유영철을 사이에 두고 한 경찰관은 앞장서고 다른 경찰관은 뒤에 섰다가 잠시 서류를 챙겨들기 위해 뒤돌아선 순간, 그 허점을 노린 유영철이 앞선 경찰관을 온힘을 다해 밀어붙이고 계단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대부분의 형사들이 야간 출동 중이라 정문까지 달리는 동안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지난 1월 신촌 찜질방 절도 사건으로 검거된 후 도주를 시도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무조건 뛰어서 흥청대는 서울 밤의 혼돈 속으로 사라지는 데 성공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제정신인지, 뱉어내는 말 중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피의자’ 유영철이 도주하자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에 비상이 걸렸다. 휴무, 비번, 휴가는 물론이고 출장중인 대원들을 포함해 모든 직원들이 소집되어 간단한 교양 후에 유영철의 사진을 담아 급히 만든 수배 전단을 받아들고 거리로, 유영철 연고지로, 역으로, 터미널로 달려갔다. 일단 수배한 죄목은 ‘절도’였다.
“유영철을 잡아올 때까진 먹지도, 싸지도, 앉지도 마!”
대장의 추상같은 고함 소리가 대원들의 뒤통수에 꽂혔다. 형사들의 초조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꾸만 시간이 흘렀다. 이런 경우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전혀 맞지 않는다. “시간은 생명이다.” 도주 중에 살인을 할 수도, 강도 상해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주하면서 증거를 인멸해 버리면 잡아도 처벌하지 못할 가능성까지 있다. 간첩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한 것이 밝혀지면 간첩이 지나간 자리마다 관할하는 군 지휘간의 목이 댕강댕강 잘려나가듯 피의자가 도주하면 시간이 지날 수록 그만큼 많은 경찰관들이 징계를 당한다.
빠른 검거를 위해 수배 전단을 전 서울 경찰에 배포하고 긴급 수배를 보고했다. 많은 경찰관들이 동원될 수록 보안은 지켜지지 않는 법이었다. 언론에서는 벌써 중요 피의자가 조사중에 도주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일부에서는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도주했다는 추측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도주 11시간 만인 11시 40분 영등포역 앞, 눈에 불을 켜고 머리에는 오직 유영철의 얼굴만 담고 있던 기동수사대 김형사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들어왔다. 이리저리 살피며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남자, 유영철이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동행한 의경들에게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표정하나 바꾸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10미터... 5미터... 3미터... 1미터....!!!
“덮쳐!!!”
거짓말과 도주의 명수, 미꾸라지같은 유영철은 다시 경찰의 체포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본부에 무전으로 검거 소식을 전하고 호송에 들어갔다. 유영철은 호송되면서도 간질 발작 흉내를 내거나 다리가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는 등 갖은 술수를 다 부렸지만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일선 경찰관들이 도주한 유영철을 검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서울경찰청에서는 기동수사대에서 보고한 내용들을 토대로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검거 당시와 이후에 보인 유영철의 반응과 행동 특성들로 미루어볼 때 출장 마사지사 갈취 여부는 그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그 ‘일각’ 밑에 감추어져 있는 ‘빙산’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미 서남부 연쇄살인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당시 분석을 주도하던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김용화 경무관은 유영철의 사진에서 왠지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혜화동 CCTV 사진 가져와봐!”
비록 뒷모습이었지만, 어머니들은 신생아 뒤통수만 봐도 안다고 뒷모습에도 분명히 개인마다 다른 특징들이 있었다.
“그래, 이거야”
다시 검거된 유영철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등 제대로 진술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은 수사부장은 직접 유영철을 신문하기로 결정했다. 서울경찰청 수사부장, 경찰의 ‘별(star)’에 해당하는 경무관으로 거대 서울경찰청 형사들의 최고 우두머리가 직접 피의자 신문을 하겠다니, 위험 부담이 매우 큰 모험이었다.
만약 수사부장이 신문해도 별 소득이 없다면 위신이 구겨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방법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부담을 안는 결정이었다. 또한 앞으로 부하 형사들이 수사부장이 알아낸 사실과 다른 내용들을 밝혀내더라도 이를 제대로 드러내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신문 과정이나 내용이 법정에서 시비거리가 된다면 경무관이 법정이 증인으로 서야 하는 초유의 사태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유영철에게도 전달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유영철은 매우 과시욕이 강하고 우쭐대기 좋아하는 심리적 특성이 있는 터라 서울 경찰 최고위 형사 간부가 직접 자신을 신문하러 온다는 사실에 흥분했다고 한다. 한국의 살인 사건 분석과 프로파일링을 주제로 범죄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날카로운 눈매의 김용화 수사 부장이 차분히 추궁하자 유영철은 이내 자백하기 시작했다.
우선 4건의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했다. 자백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며 범인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들을 하거나 현장 상황을 정확히 재현해 그리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범인임이 분명했다. 진술에 이은 현장 답사에서도 정확히 피해 주택들을 찾아내고 사건 현장의 처음 모습을 재현해냈다.
11시간 도주하는 동안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을 버렸다는 진술에 따라 수색한 결과 유영철의 하숙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 구석에서 범행에 사용한 해머 가방도 발견해 수거했다. 나중에 이 해머의 손잡이 플라스틱 안쪽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이상한 것은 이미 4건의 연쇄살인을 자백한 유영철이 정작 체포된 이유인 출장 마사지사 실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었다. 수사부장은 계속해서 유영철이 소지하고 있던 여성용 발찌와 손목시계, 여분의 휴대전화에 대해 그 출처를 집중 추궁했다. 꿋꿋하게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던 유영철은 결국 마침내 스스로의 거짓말에 지쳐 모두 피해 여성들의 물건들이고 여성들을 모두 살해해서 토막낸 후 유기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7월 16일 저녁 7시 반, 김용화 수사부장이 직접 앞장선 수사진은 유영철을 앞세워 사체 1구를 매장했다는 신촌 지역 모 대학 인근 야산으로 올라갔다. 지역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등산로를 따라 8부 능선쯤에 이르자 유영철은 한켠에 있는 고목나무 뿌리 밑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파보세요”
반성이나 후회, 주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도 태연자약한 태도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표시나 흔적도 없는 뿌리만 남은 고목 나무 밑둥을 들춰내고 흙을 조금 퍼내자 이내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다. 비닐봉지에 담은 시체 조각이었다. 모두 18조각. 사체는 이미 심하게 부패해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서울경찰청 과학 수사 요원들이 장비를 갖추고 세심하게 비닐을 벗겨낸 다음 사진을 찍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각들을 인체 형태로 맞추어나갔다. 세상에, 손가락들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지문을 통한 신원 확인을 하지 못하도록 한 짓이었다.
하지만 감식 요원들의 일만 어렵게 할 뿐 잘려나간 손가락 마디에서도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다. 첨단 기법을 통해 지문을 현출하여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한 다음 가족들과의 DNA 비교 분석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에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와 일자리를 찾던 끝에 전화방 도우미 일을 하던 여성이었다.
유영철이 지목한 다음 장소 역시 신촌 지역의 다른 대학교 인근 산자락으로 계곡이 흐르고 한켠에서는 대형 빌딩 신축 공사가 진행중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었다. 계곡 이쪽과 저쪽, 공사 현장 뒤켠 등에서 모두 11구의 시신을 찾아냈다. 이번에도 사체들은 모두 조각나 있었고 손가락 지문 부분이 잘려나갔으며 일부 사체에서는 장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유영철은 이후 조사에서 사체의 장기 일부를 믹서기에 갈아 마셨다고 진술함으로써 피해 유가족들과 사회에 또 다른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18개의 토막으로 절단된 11구의 사체들 중 일부는 서로 뒤섞여 있기도 하고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경찰청 과학 수사 요원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자들이 총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별로 조각들을 맞추어 몸형태를 재구성해내는 작업에 며칠 밤낮이 걸렸다. 지문감식, 전국의 실종자 및 가출인 명단과의 대조, 사체와 예비 유족들의 DNA 비교 분석 등 신원을 파악하는 작업도 엄청난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2,30대 여성들이었고 끝까지 가족이 나서지 않아 DNA 비교를 하지 못한 2명을 제외한 9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대부분은 출장 마사지 업소나 전화방 등에 종사하는 여성들이었지만 결혼을 하루 앞둔 채 실종되었던 예비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찰 수사에서는 이 예비 신부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한 일간 신문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예비 신부를 찾는 안타까운 사연이 게재된 것을 보고 확인한 결과 유영철에게 살해당하고 유기된 것으로 드러나 ‘5월의 신부’라는 명칭과 함께 많은 이들을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
유영철은 발굴된 시체 외에도 5명의 여성을 더 살해해서 같은 장소에 매장했다고 주장했다. 그 말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유적 발굴에 버금가는 수색과 발굴 작업을 벌였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연쇄살인범들은 자신의 범행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오래도록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로 남을 듯 하다.
2012/09/15 - [개인의취향/영화/다큐] - 그것이알고싶다 - 사이코패스 정남규 (최악의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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