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은 인천 월미도에서 손목이 잘린 채 불에 탄 차량 안에서 발견된 서울 황학동 노점상 사체 역시 자신이 살인한 것이라고 자백했고, 공개되지 않은 현장 상황을 정확히 진술해서 범인임이 확인되었다. 인천 살인 사건 현장 검증 때는 몰려든 취재진과 인근 주민들 속에 피해자 유가족들이 있었는데 너무도 태연한 유영철의 태도에 분노한 고인의 아내는 소리쳐 울다가 실신했고, 동생은 웃옷을 벗어던진 채 "유영철, 이 비겁한 놈아! 우리 형님 대신 나랑 한판 하자!"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어, 경찰과 주민, 취재진은 물론 이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로 지켜 본 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피해자의 동생이 그 후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 자살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누누이 지적해왔던 범죄 피해자 대책이 여전히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매우 크다.
경찰 구속 기간이 끝나갈 무렵 유영철은 마치 보너스를 준다는 듯이 이문동 출근길 여성 살해 사건도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역시 범인이 아니면 모를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진술했기 때문에 경찰은 현장 검증을 마친 후 유영철 사건 목록에 포함시켰고, 검찰 역시 다른 사건들과 함께 기소했지만 법정에서 유영철이 진술을 번복하고 범행을 부인하는 바람에 결국 이문동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문동 사건 역시 범죄 피해자 보호와 지원 측면에서 큰 문제를 드러낸 경우인데, 유영철을 검찰에 송치하기 직전에 취재진들이 운집해 있는 상황에서 이문동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유영철 앞으로 달려나오자 유영철을 호송하던 경찰관이 반사적으로 다리를 올려 피해자 어머니가 그 발에 맞고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언론에서는 경찰이 살인마 유영철을 보호하기 위해 비탄에 잠겨 이성을 잃은 연약한 피해자 유가족을 발로 차는 과잉 행동을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고, 여론 역시 분개했다. 하지만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경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전혀 없는 우리 제도가 문제의 원인이지, 해당 경찰관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적'으로 언제든 공격을 당할 수 있는 유영철을 무사히 호송해서 검찰에 인계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경찰관은 운집한 군중의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초긴장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었고,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 사태 앞에서 생각하고 판단할 여유도 없이 직업적 특성에 따른 반사적 행동이 나왔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청장이 공개석상에서 고개 숙여 사죄했고, 해당 경찰관은 비난의 화살과 징계의 화를 당했다.
유영철은 그야말로 거짓말이 일상화된 사람이다. 그 입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객관적 사실과 증거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곤 다 거짓말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유영철 연쇄살인 범죄의 재구성도 그의 진술보다는 객관적 사실과 증거, 심리적 특성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추론했다.
절도 등 전과 11범인 유영철은 2000년 3월 특수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3년 6개월 동안 복역했다. 13년 전 결혼해서 열한 살짜리 아들까지 둔 유영철은 성실한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어 달라는 아내의 애원을 뒤로한 채 다시 도둑질을 하다 체포되었고, 가정보다는 교도소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남편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2002년 5월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해서 이혼 결정을 받아냈다. 옥중에서 이혼 통고를 받은 유영철은 극도의 분노와 배신감에 떨었고 아내와 사회 전체를 향한 비뚤어진 복수심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유영철은 서울로 올라와 복역 중 노역에 대한 대가 등 사회 복귀 비용으로 받은 돈으로 신촌에 원룸을 얻고는 본격적인 범행 준비에 들어갔다. 교도소 복역 중에 한자 2급과 인터넷 정보검색사 자격증을 취득한 유영철은 인터넷 검색과 방송 및 언론보도 내용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들을 수집했고 살인을 주제로 한 영화 DVD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유영철은 특히 모 월간지의 정두영 연쇄 살인 사건 심층 보도를 통해 대낮 부유층 주택이라는 범행 대상과 무차별적인 폭행이라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또한 영화 <공공의 적>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등산용 칼과 신발을 시장에서 구입해 범죄에 사용했다. 인근 공사 현장에서 뒹굴던 해머를 몰래 훔쳐다 짧은 손잡이를 붙여 휴대하고 사용하기 쉽게 만들기도 했다.
- 신사동 명예교수 부부 살인
그간의 살인 사건 보도들을 분석한 유영철은 범인들이 현장에 지문이나 머리카락, 침이 묻은 담배꽁초나 혈흔 등을 남겼다가 검거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법을 연구했다. 또 경찰이 어떤 경우에 피해자 주변의 원한 관계로 보고, 어떤 경우에 강도의 소행으로 보는가를 연구하고, 동일범에 의한 연쇄 범죄로 보이지 않기 위해 범행 대상을 서울 전역에 분산시키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2주간의 '범행 준비'를 끝낸 2003년 9월 24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부자들의 상징인 압구정역에 내렸다. 이리저리 배회하며 화려한 압구정 거리에서 가진 자들과 희희낙락 잘사는 인간들에 대한 적의를 한층 고조시킨 채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유영철은 신사동 주택가에 이르러 빌딩으로 둘러 싸이고 정원에 나무가 우거져 담만 넘으면 결코 발각될 것 같지 않은 집을 발견했다.
한참을 탐색하며 기회를 엿본 유영철은 인적이 끊긴 틈을 타서 집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별로 높지 않은 담을 타고 들어가서는 10여분 동안 숨을 죽인 채 동태를 살폈다. 발각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다음 열린 현관문으로 들어가 안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노인 부부를 준비해 간 칼로 찌르고 해머로 내리쳐 잔인하게 살해했다.
절도 전과가 있는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를 것이 두려와 현금이나 귀금속은 그대로 두고, 혹시 지문이나 발자국이 묻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은 치밀하게 닦은 다음 현관문 잠금 장치를 눌러 닫은 후 대문으로 빠져 나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칼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다시 담을 넘어 들어간 뒤 잠긴 현관문을 발로 차서 문고리를 부수고 칼을 찾아 나왔다.
처음 저지른 살인이라 긴장도 많이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도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아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다. 그런데 유영철은 진술 과정에서 현관문을 찰 때 다리털이 몇 가닥 떨어졌을 텐데 경찰이 못 찾았느냐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 구기동 일가족 살해
언론 보도를 보니 의도대로 경찰이 신사동 살인을 면식범에 의한 원한 관계 살인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으며, 자신의 지문이나 체모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유영철은 자신감을 얻어 추가 범행을 계획했다.
보름이 지난 10월 9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신사동과는 정반대 방향인 불광역에서 내린 유영철은 택시를 타고 등산로와 주택가로 유명한 구기동으로 향했다. 범행 대상을 물색하며 돌아다니던 끝에 넘어갈만한 높이의 담장이 있고 담장 안쪽은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주택을 골라 넘어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몰래 들어가 세면장에서 빨래를 하던 할머니의 뒤통수를 해머로 마구 내리쳐 살해했다. 그 후 2층에서 내려오던 60대 안주인을 발견하곤 칼로 위협하고 발로 배를 걷어차 넘어뜨린 다음 집에 또 누가 있는지 묻고는 해머로 마구 내리쳐 살해했다. 2층에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안 유영철은 두려움에 도주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붙잡힐 것 같아 무기만 믿고 극도의 불안 속에 2층으로 올라갔다.
30대 아들이 표정도 이상하고 말도 더듬는 걸 보고 장애인임을 직감하자 자신감을 회복하고 칼로 위협해 공간이 넓은 거실로 나오게 해서는 뒤돌아앉힌 다음 해머로 마구 내리쳐 살해했다. 다른 피해자와 달리 이 30대 남자 피해자는 골과 뇌수가 모두 터져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가격을 당했다. 이는 유영철이 처음 만난 성인 남자 피해자에 대해 얼마나 큰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유영철은 신사동 범행 때와 달리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마구 뒤진 흔적을 만들어놓고 금고를 찾아 열려고 한 흔적을 남겼다. 신사동 범행과 연관성을 찾으면 경찰의 수사망이 자기에게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 삼성동 노부인 살인
유영철은 살인 후의 흥분을 가다듬고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쥐 죽은 듯 숨죽인 채 원룸에 틀어박혀 있었다. 언론 보도에서는 여전히 누가, 왜 살인했는지 모르고 엉뚱한 이야기들만 해대고 있었다. 혹시 경찰이 연막 전술을 쓰는 게 아닐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집에 전화해 어머니나 누나와 통화해도 이상한 낌새는 전혀 없었다.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그동안 똑똑하고 능력있는 자신을 몰라주고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좌절과 시련을 안겨준 잘못된 세상에 통쾌하게 복수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결의를 다시 한번 다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10월 16일 오전, 유영철은 다시 칼과 해머 등 범행 도구들을 챙겨들고 구기동과 반대방향인 강남구 삼성동으로 향했다. 혹시나 경찰의 잠복이나 순찰이 있을까 두려워 전보다 한참을 더 배회하며 탐색에 탐색을 거친 끝에 오후 1시쯤 눈여겨봤던 집의 담을 넘었다. 잠시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동태를 살피는데 현관문을 열고 할머니가 나와 우편물을 찾아들고는 다시 들어갔다. 우편물에 집중하느라 숨어 있는 도둑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려봤지만 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가서 칼을 꺼내들고 세면실에 앉아 빨래를 하던 할머니를 위협해 안방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집 안에 누가 더 있는지 물었다. 다른 사람은 없다는 대답을 듣자 안방 안 화장실로 끌고 가 변기 위에 할머니를 돌아앉히고 해머를 꺼내 뒤통수를 내리쳤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할머니의 사망을 확인한 뒤에는 수건을 꺼내들고 미친 듯이 자신이 온 길을 되돌아가며 방바닥을 닦아대기 시작했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구기동에서처럼 성인 남자를 만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다른 방들은 들어가지 않고 안방 물건들만 대충 흩어 놓아 뒤진 흔적을 만든 뒤 서둘러 도주했다.
- 혜화동 살인
범죄 전과로 얼룩진 데다 이혼까지 당해서 아들도 볼 수 없어진 유영철은 이미 인생을 포기한 상태였다. 처음 살인을 시작했을 때는 분노와 막연한 복수심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미 11번을 경찰에 붙잡혀 교도소를 들락거린 터라 범행을 한 지 얼마가 지나면 어떻게 알았는지 여지없이 은신처에 들이닥쳐 짓누르고 수갑을 채우는 경찰의 검거에 대한 공포심 역시 습관이 되어 있었다. 3건이나 살인을 저지르고 보니 그 공포심은 더욱 커져 있었고, 밤마다 체포되는 악몽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깨야 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스러움은 잠깐씩 고개를 들었다 이내 사라졌다. 언론에서도 이제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이라고 대서특필하고 갖가지 추측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이 한 마디씩 자신을 지목하는 듯한 말을 할 때마다 섬뜩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망이 자신에게로 조여오는 낌새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을 숨죽여 보냈다.
11월 18일 아침, 다시 범행 도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이번엔 다시 강북, 혜화동이 목표였다. 같은 방법으로 대상을 정해 침입한 뒤 집 안에서 마주친 50대 아주머니의 목에 칼을 대 위협하고 누가 더 있는지 알아낸 다음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침대에 아기와 함꼐 누워 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해머로 여러 차례 내리쳐서 살해했다. 아주머니가 놀라서 아기를 끌어안고 보호하려 하자, 아주머니를 억지로 떼어내 방바닥에 앉힌 다음 역시 해머로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살해했다.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아기를 어떻게 할까 망설였지만 차마 아기까지 해치지는 못했다. 대신 아기를 거실 소파로 옮겨 놓은 뒤 그 위에 이불을 덮어버렸다.
어떻게든 지난 범죄와 달라 보이려고 애를 써온 것처럼 이번엔 지하칠에서 곡괭이를 찾아들고 2층에서는 골프채를 꺼내 금고를 부수려고 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힘껏 내리쳤다. 그러다가 그만 삐끗하는 바람에 손에 상처가 났고 피 몇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큰일났다, 경찰이 이 핏자국에서 DNA를 추출하면 금방 범인을 알아낼 터였다. 궁리 끝에 불을 질러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피가 많이 튄 옷을 가리기 위해 옷장에서 검은 점퍼를 꺼내 입고 방에 있던 신문지를 끌어모아 담요와 이불 위에 놓고 불을 붙였다.
신문지가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집을 빠져나온 유영철은 불이 제대로 타는지 확인하기 위해 길 건너편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30분을 관찰했으나 불길이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진 나머지 다시 현장으로 되돌아가려고 내려오는데 웬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혹시 핏자국이나 이상한 것을 발견하면 큰일이었다. 서둘러 피하듯 빠져나와 현장으로 되돌아가려는데 누군가 피해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경찰에 신고할 것이 뻔했고 출동한 경찰의 눈에 띄어 체포될까 두려운 나머지 불안한 마음을 뒤로 남긴 채 도주했다.
얼마나 혼비백산했던지 도주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날 뉴스를 보니 불이 방 안을 다 태운 것이 확인되었고 마주쳤던 아주머니가 자신을 만난 사실을 경찰에 이야기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후 자신의 뒷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에 크게 실리고 늘 신고 다니던 신발 치수와 모양까지 공개되자 체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다시는 주택가 침입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