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로 보는 18대 대선 득표율 + 역대 대선 한나라당/새누리당 후보 득표 직업별 지지율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월(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삶의 향기/인문학·국사·세계사 2012.12.22
박정희 장물유산 - 영남대학교 탄생의 비밀 박정희 일가가 무혈입성에 성공한 영남대학교는 ‘원조 장물’로 꼽힌다. 정수장학회의 설립과정과 쌍둥이처럼 쏙 빼닮은 영남대. 그 설립비화를 들여다봤다. 영남대학교 정관 제1조를 보면 ‘교주 박정희’라고 소유권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영남대는 청구대와 대구대를 통합해 지난 1967년 설립인가를 받고 이듬해 개교했다. 소유주의 권력을 과시하듯 271만㎡의 전국 최대 교지를 가진 영남대는 지방명문사학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재산가치도 정확히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땡전 한 푼 안내고도 영남대 무혈입성 성공 놀라운 점은 설립자이자 교주로 명시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남대에 출연한 재산이 땡전 한 푼 없다는 것이다. 이는 1988년 10월18일 영남대 본관 3층 회의실에서 진행된 영남대.. 삶의 향기/인문학·국사·세계사 2012.12.18
(근현대사) 박정희의 김대중 납치/살인미수 사건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예상 밖의 고전 끝에 김대중에게 간신히 승리하고는 다시는 이런 선거를 치르지 않도록 유신 친위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1년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김대중은 71년 5월 선거 기간 중 의문의 교통사고(지원유세에 나선 김대중이 탄 차량과 14톤 대형트럭이 충돌하는 사고. 이후부터 지팡이를 짚게됨. 운전사는 교통사고를 냈다고 1년 징역을 받았는데 다 살지 않고 나왔고 나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함)로 인해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일본에 와 있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처음 김대중 납치를 지시했을 때, 중정 해외담당 차장보인 이철희와 일본 현지의 중정 책임자인 주일 공사 김재권(본명 김기완)은 사안의 심각성을 감안해 반대하는 입장을 .. 삶의 향기/인문학·국사·세계사 201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