띤가띤가 2012. 12. 1. 10:30

 











1994년 9월 20일, CNN을 포함한 전 세계의 방송이 서울의 서초경찰서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양손에 수갑을 찬 채 고개는 빳빳이 쳐들고 두 눈에 살기를 띠며 빽빽이 들어찬 카메라들을 향해 "더 못죽인 게 한이다!"라고 소리치는 살인범들의 모습이 전 세계로 방송된 것이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서울 거리로 대표되던 한국 이미지가 '살인 공장'을 차려놓고 5명을 연쇄 살인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체를 소각로에 태워버린 광기어린 살인 집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들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에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경찰은 밀려드는 취재 열기를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스스로 '지존파'라고 이름붙인 이 살인 집단은 졸지에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특권을 누렸던 것이다.







"돈 많다고 거들먹거리는 놈들이 싫었다."
"압구정동 야타족들, 돈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
"시작도 못하고 여기서 끝난 게 안타깝다."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지만 사회에 복수하고 싶었다."
"우리가 그들을 살해한 것이 아니라 불공평한 우리 사회가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자들에게 내리는 벌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듯 자신들의 범행을 합리화하고 보란 듯이 과시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모방 범죄의 우려를 강하게 던져주었으며, 실제로 지존파 사건 이후 '막가파', '온보현'등 사회의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모방 범죄가 잇따랐다.
2004년 여름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떠들석하게 한 연쇄살인마 유영철 역시 지존파의 아류라고 할 수 있다.





김기환(26세, 강간 치상 1범), 강동은(21세, 특수 절도 2범), 김현양(22세, 상해 1범), 문상록(23세, 특수 절도 3범), 백병옥(20세, 특수 강도 등 2범), 이경숙(23세, 여, 절도 1범), 강문섭(20세) 등 모두 7명으로 이루어진 이 살인 집단은 1993년 4월 도박판에서 만났다.
이들은 같은 전과자라는 공감대와 무협 소설, 홍콩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그리고 불우한 환경을 비관하며 가진자들에게 막연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기투합하여 자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한탕'을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조직에는 보스가 있고 이름이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기환이 두목이 되면서 그가 좋아하는 홍콩 영화 <지존무상>을 본떠 조직의 이름을 '지존파'라고 정했다. 스스로를 '지존'이라 칭한 김기환은 "돈 많은 자들을 저주한다", "돈 많은 자들에게 10억원을 뺏는다", "조직을 배반한 자는 죽인다" 라는 세가지 강령을 내걸었다. 그리고 부하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가혹하게 훈련시키며 절대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이들이 범죄 욕구와 조직적인 결속력을 강하게 다진 계기가 된 것은 '대학 입시 부정' 사건이었다.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자신들이 실패한 것은 잘못된 사회, 가진자들의 비리 때문이라고 여기던 차에 돈을 주고 대학에 입학하는 부자들의 모습이 연일 보도되자 함께 흥분하며 범행 의지를 다졌던 것이다.




이들 7명은 김기환의 계획에 따라 '가진 자들을 향한 복수'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함께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1차로 1993년 5월부터 11월까지 대전에 있는 '둔산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받은 노임을 모았다. 11월부터는 2차로 경기도 분당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모았다.

그런데 두목 김기환은 본격적인 범행에 들어갔을 때 잡히지 않으려면 영화에 나오는 전문 킬러 수준의 기술과 담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살인 예행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둔산에서 노동일을 하며 합숙하던 1993년 7월 18일 밤 11시경, 조직원들을 끌고 충남 논산의 한적한 마을로 들어가 그 근처의 인적이 없는 철길 옆에서 마침 혼자 귀가하던 여성(최모양, 20세)을 발견하곤 납치를 지시했다. 그리곤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대전 유성구 '계룡대' 주변 야산으로 데려가서 차례로 강간한 뒤 김기환이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거야"라며 마치 시범을 보이듯 최양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최양의 사망을 확인한 김기환은 조직원들을 시켜 땅을 파고 시신을 암매장했다.





 



한달 뒤 공범 중에 스물 세 살이라고 형행세를 하며 다른 공범들에게 선배 대접을 받던 송봉우의 실제 나이가 열여덟 살임이 밝혀지자 보복을 두려워한 송군이 공동 예금통장에서 300만원을 인출해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추적끝에 경기도 시흥 친척집에 몸을 숨기고 있던 송군을 찾아낸 지존파 일당은 "다 용서해줄테니 화합을 다지는 차원에서 개나 잡아먹으러 가자"며 유인해낸 뒤 전남 영광군의 속칭 '불암산'으로 갔다. 산에 올라가자 약속과 달리 송군의 두 손을 철사로 단단히 묶은 다음 집단 폭력을 가한 일당들은 '배신한 자는 죽인다'는 강령에 따라 돌아가며 송군을 돌로 내리치고 칼로 찌르고 곡괭이로 찍어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 송군을 유인하기 위해 실제로 개를 차에 싣고 간 일당은 송군의 시체를 암매장한 후 그 자리에서 개를 잡아먹었다.
대전과 분당에서 노동으로 돈을 모은 뒤 지리산에 들어가 일주일동안 합숙하며 체력 훈련과 살인 연습 등 철저히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야영을 하고 물 외에는 일체 먹지 않으면서 인내심을 키웠다. 또한 범죄 조직원들의 의리를 묘사한 소설과 교도소 생활을 담은 책, 일본 야쿠자 소설 등을 돌려 읽으며 정신 무장을 강화했다.






1994년 5월, 일당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에 있는 두목 김기환의 어머니 최모씨(78세)의 외딴 집으로 왔다. 김기환은 어머니에게 "집을 새로 지어 드리겠다"며 이웃 마을에 단칸방을 빌려 내보낸 뒤 8월까지 4개월동안 외딴집을 범죄 아지트로 개조했다. 다들 건축 공사장에서 잔뼈가 굵은 터라 대지 117평, 건평 38평의 역(逆) 기역자 형태로 순수 슬래브 건물을 지으면서 완전 범죄를 위한 치밀한 장치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한적한 시골인데도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본채와 20여 미터 떨어진 대문에 전력검침기를 설치하고 자기들끼리 이용하는 신호용 초인종과 외부인이 사용하는 인터폰을 별도로 설치했으며 방 3개와 지하실을 인터폰으로 연결해두었다. 차고 겸용으로 쓸 창고를 따로 지어 용접용 산소통 2개와 절단기 등 각종 범행 도구들을 비치했고, 창고 한구석의 철판 뚜껑 밑에는 지하 아지트로 통하는 나무 계단까지 설치했다.

계단을 내려가서 오른쪽으로는 둔중한 철문을 설치했는데, 이 철문 뒤에는 1미터 간격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경찰서 유치장처럼 쇠창살로 막은 감금 장소를 만들었다. 지하 계단에서 정면을 향해 설치한 또 다른 철문 뒤에는 사체와 증거 등을 태우기 위해 2평 남짓한 '소각장'을 만든 뒤 소각로의 연소통을 집 뒤편에 있는 대형 환풍기와 연결했다.








아지트 건설 작업이 한창이던 6월 17일, 두목 김기환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평소 눈여겨봤던 동네 선배의 조카인 중학교 1학년생을 강간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김기환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뒤 광주 교도소에 수감되었고, 두목을 잃은 지존파 일당은 어찌할 줄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김기환에게 면회 갈 때마다 지시를 받는 등 '원격 조정'에 의해 범행 준비를 계속했다. 아지트의 구체적인 구조와 시설에 대해 일일히 김기환의 지시를 받아 작업을 진행한 일당은 8월 말쯤 작업이 다 끝나자 교도소에 있는 두목에게 그 소식을 전하고 범행을 지시받기에 이르렀다.

두목 김기환이 옥중에서 남긴 지시는 "고급 승용차를 탄 사람들을 나비해서 아지트로 데려온 후 고문하고, 몸값을 최대한 받아낸 다음 죽여라"였다.






9월  8일 새벽, 교도소에 수감된 두목을 제외한 5명의 지존파 일당은 트럭과 승용차에 나눠타고 러브 호텔이 많아 불륜을 저지르는 부유층들이 많이 다닌다고 알려진 경춘가도 양수리 부근으로 갔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새벽 3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고 지존파 일당이 운전하는 승용차와 트럭은 이 고급 승용차의 앞뒤를 가로막고 강제로 차를 세웠다. 앞지르기 시비라고 짐작한 고급 승용차 운전사가 차에서 내렸고, 일당들은 다짜고짜 가스총을 쏘고 각목을 마구 휘둘러 남자를 쓰러뜨린 뒤 허벅지를 칼로 찔러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존파 일당들은 널브러진 남자의 손과 발을 포장용 테이프로 묶고 입에도 테이프를 두른 다음 트럭 화물칸에 싣고 덮개를 덮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납치했다. 고급 승용차 안에는 20대 여성이 타고 있었는데, 지존파 일당 중 3명이 고급 승용차에 동승해 이 여성을 위협하면서 역시 전남 영광 아지트로 납치해왔다.

아지트로 돌아온 일당은 납치해 온 남자와 여자를 지하 감금 시설에 가둔 뒤 여성을 집단 강간했다. 저녁이 되자 지존파 일당은 두목이 지시한 대로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신분과 가족 관계등을 추궁했는데, 남자는 밤무대에서 반주하는 약사 이건중(가명, 34세)씨였고 여자는 카페 여종업원 이예나(가명,27세)씨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다음날 일당은 의논을 거듭한 끝에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계속 감금해 둔 채 성폭행하기로 결정하고는 몸을 다쳐 신음하고 있는 이건중씨에게 억지로 술을 먹여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예나 씨가 건중씨의 머리에 비닐 봉지를 씌우고 목을 조르는 살인 과정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다음날인 9월 10일, 사체를 건중 씨 소유의 고급 승용차 운전석에 앉힌 채 전북 장수군의 인적이 뜸한 벼랑 위에서 18미터 아래 절벽으로 차를 밀어 떨어뜨림으로써 마치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 일당은 예나 씨가 '공범 의식'을 느껴 자신들과 함께 머물도록 하기 위해 이번에도 예나 씨를 범행 과정에 강제로 참여시켰고, 범행이 끝나자 다시 집단 강간했다.





지존파 일당은 하루 전에 미리 그 장소에 와서 차가 급제동을 하면서 길에 바퀴 자국을 남기는 '스키드 마크'까지 만들어놓는 치밀함을 보였고, 그 결과 이 사건은 음주 운전으로 인한 단순 교통 사고로 처리되었다가 지존파 일당이 검거된 후 진상이 밝혀졌다. 당시 차 안에서 발견된 건중 씨의 시체는 맨발이었고, 사고 지점이 건중 씨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장소라는 점, 건중 씨가 4일간 행방 불명 상태라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낸 상황임을 감안하면 좀 더 면밀한 수사가 필요한 단서들이 있었다. 경찰이 이를 놓쳤던 점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건중 씨의 사체를 유기한 지 사흘이 지난 9월 13일 저녁, 아직까지 범행의 본래 목적인 돈을 강탈하지 못해 초조해진 지존파 일당은 다시 돈이 많아 보이는 표적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신흥 부자가 많기로 소문난 경기도 분당으로 갔다. 몇달 전 범행 준비를 하며 막노동을 한 터라 잘 알고 있는 공사 현장 인근이었다. 

마침 추석 하루 전날이라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 묘지'에 미리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 경남 울산에 위차한 (주)S기계 공업의 소진영(가명, 42세) 사장과 아내 박민지(가명, 35세) 여사도 있었다. 멀리서 찾아와 부모의 묘를 정성껏 다듬고 가는 효자 효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존파 일당은 건중 씨와 예나 씨를 납치할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소사장 부부를 납치해서는 전남 영광 아지트에 있는 지하 감방에 가두었던 것이다.

14일 새벽 1시, 지존파 일당은 소진영 사장에게 "살려 보내줄 테니 회사 총무부장에게 전화해서 현금 1억원을 가지고 오라고 지시하라"고 요구했다. 소사장은 시키는 대로 총무부장에게 전화해서 오후 1시, 전남 광중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돈을 건네 받기로 했다. 일당은 박여사는 인질로 지하 감방에 감금해둔 채 소사장과 광주 약속 장소로 가서는 소사장만 보내 돈을 받아오게 하고 자신들은 차에 앉아 감시하는 방법을 택했다(2004년 12월 초 중소기업 회장 일가족을 납치하여 같은 방법으로 돈을 빼앗은 일당이 경찰에 모두 검거되는 등, 이후 이러한 지존파의 납치 강도 수법을 흉내 낸 모방 범죄가 여러 건 발생했으나 모두 검거되었다). 

부인의 생명을 담보로 잡고 있으니 허튼 수작을 하면 알아서 하라는 협박을 뒤통수에 달고 총무부장 일행을 만난 소사장은 고개를 숙인 채 "납치됐어, 따라오지마!"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돈가방을 받아들자마자 뒤돌아서 왔다.

총무부장 일행은 당황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서 있다가 회사로 돌아온 뒤 사장 주변 사람들에게 정황을 확인한 후 저녁 6시, 관할 울산 남부 경찰서에 신고했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즉시 소사장이 돈을 건네받은 지역인 광주 서부경찰서에 통보하고 공조 수사 체제에 들어갔지만 납치되었다는 사장의 말 한마디 외에는 단서도, 증거도 없는 상황이라 수사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혔다.

한편 처음으로 범행 목적인 '거액 현금 강탈'에 성공한 지존파 일당들은 소사장 부부를 살해해 증거를 없애는 것이 두목 김기환의 뜻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다음날인 9월 15일 새벽 3시, 극심한 공포심과 풀려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뒤섞인 혼란한 심정으로 잠을 못 이루던 소사장 부부는 납치범들의 지시에 따라 억지로 과음을 했고 지존파 일당은 술에 취해 의식이 혼미해진 이들에게 공기총을 쏜 다음 칼과 도끼등을 마구 휘둘러댔다. 지존파는 이 살인극에도 인질 예나 씨를 억지로 참여시켜 죄책감과 공범 의식을 갖도록 했다. 혹시라도 도주할 생각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지존파 일당은 소사장 부부가 사망한 뒤에도 증거 인멸을 위해 칼과 도끼 등으로 사체를 절단한 뒤 소각로에 넣고 태워버렸다. 사체를 태우는 사이 혹시 냄새나 연기가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당에 불을 피우고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치밀하면서도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