띤가띤가 2012. 11. 21. 08:30

구체적인 살인 현장이나 수법 묘사가 포함된 글이므로 읽는 데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공교롭게도 주택가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 발생 지역의 이름 두 자가 모두 같은 자음으로 시작하다 보니 항간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을 모방한 ‘가나다 살인’이라는 풍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즉 ‘신사동=ㅅㅅ’, ‘구기동=ㄱㄱ’, ‘삼성동=ㅅㅅ’, ‘혜화동=ㅎㅎ’이기 때문에 다음 사건 역시 같은 자음으로 구성된 명칭을 가진 동네에서 발생할 거라는 예측도 제기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혜화동 사건 이후 약 3개월이 지난 2004년 2월 11일 정오 무렵, 분당 ‘정자동’의 고급 아파트에서 팔순의 부유층 노인이 둔기로 머리를 여러 차례 강타 당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정말 ‘가나다 살인’이란 말인가? 그러나 정자동 사건은 앞의 4건과 몇가지 다른 점들이 발견되었다. 첫째, 주택이 아니고 경비원이 있는 고층 아파트였다. 둘째, 사용된 둔기가 훨씬 작았다. 셋째, 발견된 발자국의 크기와 모양이 달랐다. 넷째, 신용카드 등 금품이 없어졌다. 결국 이 사건은 한달이 채 안 된 3월 4일 범인이 검거되었다. 증권사 직원이 고객을 찾아와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다 거절당하자 피해자를 살해하고 신용카드 등을 훔쳐 달아난 ‘면식범에 의한 금품을 노린 살인’이었다. 결국 서울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과는 관계가 없었다.



신사동, 구기동, 삼성동, 혜화동 사건을 전담 수사하는 수사 본부가 각각 4개 경찰서에 분산 설치되었다. 철저한 자치 경찰제를 운영하는 영국도 연쇄 살인에는 합동 수사 본부를 설치 운영하고, 미국도 FBI에서 직접 관장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시스템이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단일 수사 본부가 설치되면 공개적으로 연쇄살인임을 인정하게 되는 문제도 있고,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이 없는 우리 실정상 통합 수사 본부를 설치하면 경무관인 형사부장 이하 거의 모든 서울 경찰이 일개 지방경찰청 평검사 밑에 복속되어 그 지휘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어쨌든 경찰은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서 전방위적인 수사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사건 현장인 4개 동 거주 주민들과 외판, 수리, 배달업 종사자 대상 탐문 수사와 최면 수사는 물론, 범행 현장 인근을 지나는 시내버스와 지하철의 사건 당일 이용자 추적 수사, 인근 정신질환자와 불량배, 전과자 대상 수사, 피해자 주변인들에 대한 수사, B캐주얼화 구입자 확인, CCTV 영상 분석 등 ‘땅바닥의 돌멩이 하나까지 빼놓지 않고 들춰보는’ 대대적인 조사와 수색, 수사가 실시되었지만 유력한 용의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범인이 신었던 신발의 브랜드도 ‘버팔로’라고 공개하고 언론과 방송에 연일 보도되어서인지 제보도 50여 건 접수되어 밀착 수사한 결과 벌금을 내지 않고 고시원에 숨어지내던 수배자와 강도 수배자 한 명이 검거되었지만 연쇄 살인과는 관계가 없었다. 범인이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 위축되었는지 추가 사건도 발생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흘렀다.




서울 주택가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식어가던 2004년 봄,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심야에 귀가하던 여성들이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괴한에게 칼로 마구 찔리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마침 경기 남부 연쇄살인(속칭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영화화한 <살인의 추억>이 화제가 되던 때라 언론에서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라며 연일 자극적인 보도를 했고, 일부 언론은 모두 3건 중 2건이 목요일에 발생했고 그 중 비오는 날이 있었다는 점을 과장하여 ‘비오는 목요일 밤의 괴담’이라며 흥밋거리로 삼기도 했다.



[서울 서남부 여성 연쇄 피살 사건]

1. 2004년 2월 26일 새벽 5시, 신림동 : 방학을 이용해 서울 할머니댁에 올라와 있던 여고생(18세)이 새벽에 일 나가는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가던 길에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10여차례 칼로 찔렸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짐.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평생 후유증이 남는 중상.

2. 2004년 4월 22일 새벽 3시, 고척동 : 친구집에 갔다가 귀가하던 여대생(20세)이 자신의 집 현관에서 문에 열쇠를 꽂아둔 채 사망한 채로 발견됨. 칼로 가슴과 다리 등 6군데를 찔림.

3. 2004년 5월 9일 새벽 2시, 대방동 보라매 공원 :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던 여대생(22세)이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10여 차례를 찔려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사망.

일부에서는 주택가 부유층 노인 연쇄 피살 사건과의 연관성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범행 시간, 장소, 대상, 방법, 흉기 등이 전혀 달라 동일범의 소행으로 볼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두 종류의 연쇄 살인이 한꺼번에 발생했고 범인은 오리무중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민심은 심리적 공황(panic) 일보직전까지 와 있었다. 그런데 훨씬 더 엄청난 공포극은 아직 그 싹도 드러내지 않은 채 묻혀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신촌 찜질방 절도 사건

혜화동 사건이 발생한 지 두달 후인 2004년 1월 20일 아침 7시 반, 신촌에 있는 찜질방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수면실에서 잠자던 손님의 옷장 열쇠가 없어져 확인해보니 누군가 열쇠를 훔쳐 지갑에 있던 현금과 상품권 등 1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간 것이었다. 몇 시간 전인 새벽 4시에도 비슷한 도난 사건이 발생했던 터라 종업원이 탈의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옷장을 열고 돈을 꺼내간 손님의 얼굴을 기억했다.

경찰이 출동했고 용의자는 붙잡혔다. 이름은 유영철, 절도 등 전과 9범이었다. 이 용의자는 범행을 급구 부인하는 한편, 피해자에게는 “20만원을 줄 테니 없었던 일로 하자”며 합의를 종용했고 연행하던 경찰관에게는 화장실에 가자고 하고는 피해자와 합의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결국 피해자가 합의해주지 않자 경찰은 용의자 유영철에게 수갑을 채워 경찰지구대로 연행했고, 유영철은 목격자 진술을 듣느라 잠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수갑을 풀고 도주했다.

경찰에 쫓기던 유영철은 3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도주하다 다시 붙잡혔다.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데다 찜질방 종업원의 진술 말고는 증거가 없고, 도난 당한 금액이 10만원 밖에 안 된다는 이유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 영장이 기각되고 유영철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10만원이라는 소액 절도 혐의를 받고 범행을 부인한 상태에서 수갑을 풀고 도주극을 벌이는 이상 행동에 주목하지 않은 경찰과 구속 영장을 기각한 책상머리 법조인들의 성의 없는 판단이 초래할 엄청난 비극을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한국 범죄 수사 역사에서 다시 한번 ‘천추의 한’으로 남을 순간이었다.

이문동 골목길 여성 피살 사건
2004년 2월 6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외국어대 인근 이문동의 한 골목길,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을 서두르던 의류 상가 직원 전효실(가명, 여, 25세)씨는 누군가와 마주쳤고, 가슴과 팔 등 5군데를 칼에 찔려 몸부림치다 가까이 있던 중국집 문을 밀고 쓰러졌다. 한창 배달 준비를 하던 중국집 주인은 갑자기 피를 흘리며 들어와 쓰러진 여성에게 다가가 “무슨일이예요? 괜찮아요?” 하고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신음 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112 신고 후 5분만에 경찰이 도착해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피해자는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은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금품을 가져가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치정이나 원한 관계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피해자 주변에서 치정이나 원한 관계를 전혀 찾을 수 없었으므로 노상 강도 등 낯선 사람에 의한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수사 방향을 전환했다. 그래도 뚜렷한 용의자를 확보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인천 월미도 석유 가게 주차장 살인 방화 사건
2004년 4월 14일 새벽 1시 50분 경, 인천 월미도 바닷가 가까이 있는 석유 가게 주차장에 있던 승합차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인근 석유 저장고로 불길이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경우 불길을 잡고 진화에 성공했는데, 불이 꺼진 차안에서는 시체 1구가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시체는 양손목이 절단되어 없는 상태였고 온몸에 20여군데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머리에서 커다란 둔기로 얻어맞은 상처도 발견되었다. 나중에 밝혀진 피해자의 신원은 서울 황학동 도깨비 시장 노점에서 불법 CD나 비아그라 등을 판매하는 남자(44세)로 채권 채무나 원한 관계, 치정 등 살해될 만한 주변 문제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살해되던 날 저녁 7시경 피해자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뒷골목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인근 가게 종업원에게 목격되었다. 이 30대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3건의 여인 실종 신고
연초부터 부천에서 초등학생 2명이 실종된 후 사체로 발견되고 포천에서도 실종된 여중생이 피살된 채 발견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실종 접수 이후 경찰의 초동 조치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경찰청에서는 2월 17일부터 실종자 수사에 전념하는 ‘100일 작전’을 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100일 작전이 한창이던 3월 24일, 서울의 한 경찰서에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던 20대 여성의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다. 밤에 손님의 전화를 받고 나간 이후 소식이 없어 걱정하던 동료가 신고한 것이었다. 실종자 수사에 전념하는 100일 작전 중이었지만 유흥 관련업에 종사하는 20대 여성들은 종종 연락없이 영업 장소를 옮기기도 하고 일을 그만두고 새 삶을 찾기 위해 종적을 감추기도 한다고 판단한 경찰은 ‘일단 기다려보자’며 신고자를 돌려보냈다.

6월 4일과 28일에도 비슷한 실종 신고가 접수되었지만, 유사한 방법으로 별 다른 조치없이 그냥 넘어갔다. 몇달 후, 이 3건의 실종 신고 중 단 한 건만이라도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피해자를 단 몇명만이라도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에 피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나비효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사건이었다.



부유층 노인 연쇄 살인 사건, 이문동 여성 피살 사건, 서울 서남부 여성 연쇄살인 사건, 인천 월미도 방화 살인 사건, 그 어느 사건도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2004년 7월 12일 밤 11시경, 서울 관악구에 사무실을 둔 출장 마사지 업체에 30대 남자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 표시 장치에 남겨진 번호는 휴대전화, 신촌 로터리에서 만나자는 호출이었다. 이 전화를 받고 나간 임희선(27세, 가명) 씨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업소로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비명같은 한 마디를 남겼다.

“나 지금 납치되고 있어요”

전화를 받았던 동료가 다시 통화를 시도해보았지만 “고객님의 전화가 꺼져있어...”라는 안내 메시지만 흘러 나왔고, 이후 희선 씨는 연락도 두절되고 업소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비록 출장 마사지업에 종사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고향 가족에게 꼬박꼬박 돈을 보내는 보람으로 살아가던 희선 씨였기에 장난이나 허위 전화는 아니라는 것이 업소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이틀이 지난 7월 14일, 업주 노씨는 과거 사건 관계로 만난 적이 있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양형사에게 전화했다. 양형사는 전화로 들은 내용을 첩보로 작성해서 보고하고는 수사에 착수했다. 유흥업 종사자들의 행동이 워낙 돌출적이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었으나 양형사는 미약하게나마 왠지 ‘사건’이 될 것 같은 감을 느꼈다.




이튿날인 7월 15일 새벽 2시, 희선 씨를 호출했던 번호가 전화기 화면에 뜨면서 벨이 울렸다. 신촌 G편의점 앞으로 마사지사를 보내달라는 목소리는 사흘 전 그때와 같았다. 신촌 현장에서 잠복 근무 중이던 양형사에게 연락한 뒤 마사지사가 출발했고, 마사지 업소 주인과 친구들은 눈에 띄지 않게 마사지사를 따라갔다.

마사지사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자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남자는 모습을 감춘 채 마사지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교체해달라고 전화했다. 다시 교체된 마사지사가 약속 장소에 가니 남자는 전화를 걸어 만날 장소를 인근 H대학교 앞, G마트 뒤편, G마트 앞편 등으로 자꾸 바꾸어대는 것이었다. 간첩 접선하듯이. 할 수 없이 양형사 팀은 합정동 H대학교 근처, 마사지 업주 노씨 일행은 신촌 G마트 근처로 나뉘어 잠복하기로 했다.

새벽 4시 45분 경, 인적 없는 G마트 뒤 골목에서 웬 남자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걸 봤는데, 곧이어 업소에서 노씨에게 연락이 왔다. 방금 전에 남자가 다시 G마트 뒤편으로 마사지사를 보내달라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저놈이다’ 싶었다. 노씨는 양형사가 단단히 일러준 대로 섣불리 덮치는 대신 양형사에게 전화했고, 양형사는 바로 출발할 테니 인근 순찰지구대에 연락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일렀다.

새벽 5시, 연락을 받은 순찰지구대 김경장이 출동했으나 그 사이 남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뿔싸, 놓쳤구나’ 낚시꾼이 입질이 약해 조금만 더 하다가 그만 미끼를 뜯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번 미끼맛을 본 고기는 다시 돌아오는 법, 20분 뒤 남자는 G마트 앞 길가에 다시 나타났고 김경장과 노씨 일행은 사방을 포위하며 덮쳤다.

남자는 격렬히 저항하며 손에 들었던 무언가를 입에 수셔넣었고, 김경장 일행은 손가락을 입에 넣어 삼키지 못하게 한 다음 마침 주머니에 들어 있던 숟가락을 물려서 입안의 물건을 빼냈다. 출장 마사지 업소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지 뭉치였다. 마침 양형사 일행이 도착해 수갑을 채우고 차에 태웠다. 차에 태우는 과정에서도 격렬히 저항하는 통에 양형사와 일행은 남자의 이에 물어뜯기고 머리에 받쳤으며 남자 역시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으나 큰 부상은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형사는 이 남자가 마사지사를 폭행하고 금품을 뜯는 갈취범 정도로 생각했고, 예전같으면 순순히 체포에 응할 이런 잡범들까지도 격렬히 저항해대니 점점 형사 노릇도 힘들어진다고 투덜거리며 기동 수사대로 향했다.